Thursday, May 9, 2013

World Mission Report dated May 6, 2013

From 8-10 pm coworkers from UBF Chapters in Seoul and its sattelite cities met together at a Christian conference center next to the Chongno UBF center and listened to mission reports from 5 missionaries including Isaac H. Kim from the U.S.

Isaac Kim's testimony and report are summed up below in English and the full Korean version is in Korean.

[At first the report was scheduled to go on May 13, so Shepherd David Kim the Korean General Director asked me to change the return flight to a date after May 13. But Korea UBF changed the plan again to open the report session on May 6, rather than May 13.]

* Summary

Isaac H Kim started studying the Bible at Chongno UBF in 1972. After serving the Lord as a lay shepherd in Chongno UBF for 10 years he moved to the U.S. (Los Angeles) and since then he served the Lord in the U.S. for the next 30 years.

Primarily 3 Bible verses impacted him:
1) Genesis 1:31 "It was very good."
Through this passage he found the meaning of his life, for this passage showed him that his life was good in God's eyes. In the past he thought he was no good.

2) Romans 1:5 "We received the grace and apostleship..." Through this passage he received the calling to go to the U.S. as Jesus' witness.

3) Mark 16:20 This passage tells us that the disciples' portion is to preach the gospel, and Jesus' portion is to save those who hear and believe in Jesus.

He based his report on Acts 19:20, "The word of the Lord...grew in power."

* Korean version

거룩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보고를 통하여 이 부족한 종의 죄와 허물을 덮으시고 오로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가 이제까지 말씀으로 도와 오던 형제가 이제 한국에서 결혼을 하는데 저보고 주례를 해달라고 해서 시온성 한국을 심방케 되어 지난 주 토요일 양재동 엘Tower에서 주례를 마치고 오늘 선교보고를 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을 하고 1972년도에 UBF에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금년이 2013년이니깐 제가 UBF 생활을 한국에서 요회목자 생활 10년, 미국에서 선교사 생활 30년 합쳐서 40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40년 역사를 사도행전 19장 20절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세력”이라는 제목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19장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Part Ⅰ.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31)
저는 1949년 음력 동짓달 스물 하룻날 경상도 상주군 공성면 옥산동 167번지에서 안동 김씨 집안의 3남 3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은 초등학교도 못 나오셨지만 머리가 명석하셔서 한학을 Master 하시고 시골 서당을 운영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문맹이셨지만 부지런하셔서 가난한 농촌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건강하게 키우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저의 큰 형님께 소망을 두시고 논밭을 팔아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기 때문에 재력이 못미쳐 막내인 저를 저희 동네에서 돈을 제일 잘 버는 김약국 밑에 넣어 한의사로 키우고자 하는 소망을 같고 계셨습니다. 옥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갈려고 하는데 못 가게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김천 중학교에서 장학금을 준다는 소식을 듣고 허락을 하셨습니다. 김천 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려고 하는데 아버님께서 또 못 가게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또 김천 고등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하니까 허락을 하셨습니다. 김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려고 하는데 또 못 가게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김천 중고등학교 재단에서 서울대에 합격만하면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험을 받지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해서 전액 장학금뿐만 아니라 기숙사 생활비까지 나왔기 때문에 허락하셨습니다.

이렇게 대학 생활은 시작했지만 제 내면 가운데 해결되지 못한 인생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정말 사랑합니다. 아버님도 정말 존경합니다. 아버님은 아내가 둘이셨는데요 큰 어머니는 큰 집이라고 불렀고 저의 어머니는 작은 어머니로서 작은 어머니라고 불렀고 저는 큰 어머니 호적에 올라가 있어서 혼란이 있었고요, 가난한 농촌에서 두 집 자녀들을 키우자니 어려움이 많아 자연히 “매타작”이 많았습니다. 아버님께서 화를 내시면 정말 무서워 어머니는 저희 자식들에게 화풀이를 하셨는데 그때마다 늘 하시는 말씀이 똑같아요. “내가 왜 너를 낳아 내가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와 너를 확 깨물어 갔으면 좋겠는데 왜 안 그러는지 모르겠다.” 저는 자라면서 이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머리가 좋아서 장학금을 받아 서울대까지 들어갔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머리가 참으로 나쁜 사람인데요, 상황이 너무 괴롭다보니 어찌하던지 이 상황을 벗어나 탈출할 기회를 노렸는데요. 어찌하든지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이라도 받아 출애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967년 2월에 드디어 탈북자처럼 저주 받은 땅 경상도 상주군 공성면 옥산동을 빠져나와 고등학교 장학재단에서 마련해준 서울 망우리 기숙사로 옮겼습니다.

대학4년은 그럭저럭 허송생활했습니다. 1971년에 졸업을 했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고시 공부하는데 저는 인생의 의미를 몰라 ‘왜 내가 고시공부를 해야 되지?’하는 의문에 시달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졸업하고 71년 2월 학교 교문을 나오는데요. 갈 데가 없어요. 그 해 동국대학 중퇴 후 시골에 돌아와 살림을 떠맡았던 형님께서 빚잔치를 하는 바람에 시골 집안이 거덜나 아버님은 빚쟁이를 피하여 보은 속리산 화전촌으로 피신하시고 형제자매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아무도 졸업식에 참석을 못했어요. 군대를 기피한 상태라 경찰의 Black List에 올라 있었고요. 졸업 후 갈 데가 없어 할 수없이 속리산 화전촌으로 피신했는데요. 아버님께서 어디서 꼬불쳐 놓으셨던 돈으로 송아지 한 마리 사갖고 계셨는데 이것을 팔아서 제게 주시면서 서울에서 다시 고시공부를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할 수 없어서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제 동기 이우철 목자와 함께 서울 동숭동 뒷산에서 고시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제게 임했습니다.

겨울이었는데요. 이우철 목자님이 종로 UBF에 창세기 Group Bible Study로 저를 초청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창세기 7강을 Cover 한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창세기 1강, 1장 31절 말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이 제 심령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항상 제 어머니가 “내가 왜 너를 낳았는데 모르겠다”는 말씀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존재 의미에 대한 질문을 갖고 있었는데 이 말씀 속에서 분명한 답을 찾았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세력을 얻으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힘”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정말 살고 싶었지만 살 “힘”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말씀은 제게 살 “힘”을 주셨습니다. 갑자기 “힘”이 없다가 새 “힘”이 생겼습니다. 이 새 힘으로 열심히 고시공부를 했는데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그 이듬해 고시합격을 허락하시고 그 보다 더 영광스러운 요회목자 직분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Part Ⅱ.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로마서 1:5)
이후 10년 동안 종로학사회에서의 생활은 ‘은혜’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0년 동안 요회목자로서 성대 Campus 심방하며 fishing하고 양치는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말씀을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번 말씀의 “힘”을 체험했기 때문에 계속 일용할 양식을 쓰는 가운데 많은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1972년 10월 9일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리브가 사모님과 믿음의 결혼을 하는 놀라운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그냥 입발림으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저는 중고등학교의 점심시간 때마다 학교 뒷산에 올라가 팔을 베고 누워있으면 경부선 열차가 김천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아, 나는 언제나 서울 가보나? 혹시 내가 서울이라도 간다면 서울 아가씨를 만나 같이 손잡고 한강철교를 거닐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는데요. 하나님께서 이 꿈을 이루어주신 거예요! 리브가 동역자는 정말 “서울” 자매님이거든요. 그런데요. 가장 큰 은혜 중에 은혜는 “사도”의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도 후반에 로마서 성경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종로학사회 여러 평신도 목자 중에 하나였는데요. 제게 항상 힘든 강의를 맡기시더라고요. 서제임스 목자같은 분은 은혜스러운 강의 “믿음의 성장” 같은 것을 맡겼는데, 사무엘 선교사님께서 제게는 “믿음이 없는 세상” 같은 것을 맡기시고 항상 “지옥도”를 그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로마서 성경학교를 통해서 로마서 1:5 말씀을 깊이 영접하였습니다.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믿음으로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보십시오. 여기서 모든 “이방인”은 “로마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피지배민족이고 로마는 초강대국(Super Power Nation)이었습니다. 그런데 1970-80년대 만해도 미국은 로마같이 Super Power Nation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제가 초등 학교 때 미국에서 원조해준 분유나 지우개, 필통 등 구호물자를 받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 안에서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미국 대학생들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는" 직분이 생긴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미국에 선교사로 가고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길”이 안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힘” 입어 계속 기도 했을 때 드디어 1982년 8월에 미국 L.A.에 UCLA 법대 석사과정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 해 여름에 UCLA에 유학생 선교사로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Part Ⅲ.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마가복음 16:20)
1982년 여름에 UCLA 기숙사에 제가 동역자와 아이들보다 6개월 먼저 도착하여 기숙사 방에서 의자만 놓고 저 혼자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무슨 말씀을 전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그러나 뭔가 말씀을 전했는데요. Fully Message를 써서(6page 정도로 기억되는데요) 전하고 혼자 광고도 하고 헌금도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기이하신 분인데요. 얼마 전에 Shannon Livingston 형제가 자기 집으로 저를 초청해서 가봤는데 제가 그때 UCLA 학교 창고 책임자한테서 강대상 하나를 Donation (기부, 기증)받아 강대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그 강대상을 이 형제가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더라고요. 하도 신기해서 그 강대상을 가운데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UCLA 학생 기숙사에서 시작한 이래 Center를 여러 번 옮겼습니다. UCLA에서도 다섯 번 정도 옮겨가고 1980년대 후반에 UCLA에서 Long Beach로, 2000년 초에는 Long Beach에서 현재 Downey로 옮겼습니다. 금년이 2013년인데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한국 선교 본부 동역자님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귀하신 선교 동역자들도 보내주셨고요. 지난 3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선교 동역자들이 저의 LA Center에서 일정기간 동역하다가 West L.A.(Paul Chin & Dr. Abraham Moses), San Diego(Dr. David & Ester Shin), EL Camino(경성의 John & Grace Baik), Cemitos(Dr. Abraham & Sarah Jeong of KwangjooⅢ), Glendale(안암의 Abraham Glen & Anna Kim), COD(David & Joy Kim) of Chicago, North Western Univ.(경성의 Dr. David & Praise Cho), UC Davis (종로의 Abe & Suzie Yoon), Seattle(경성의 Abraham & Sarah Song), NIU (Julie and Kevin Jesmer) Sao Paulo, Brazil(Nathan & Ataiena) 등지로 나아가 주의 말씀을 전파하게 도와주셨습니다.

현재 저희 LA UBF Center에서는 12개 Campus를 섬기고 있고 장년 120명 유년 120면 약 240명 안팎의 주일예배가 되고 있고요. 지난 3월말 봄수양회에는 140명 참석자 중 14명 새 양이 동참하고 지난 4월 셋째 주 주일에는 12명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세어보니 지난 30년간 36개의 믿음의 가정을 세우게 도우셨는데요. 매년 한 가정 이상씩 주례를 한 셈입니다.

저는 지난 30년 역사를 마가복음 16:20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여기에 “전파”라는 단어와 “역사”라는 단어가 있는데요. “전파”는 저희 몫이고요, “역사”는 주님의 몫입니다. 저희가 “말씀의 세력”을 받고 우리의 몫을 다할 때 주님께서 생명구원과 제자양성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한마디 “말씀의 세력”

P.S. I invited brother Woo Chul Lee to a dinner fellowship and then to the report. He is the president of the Korean Real Estate Trust Company. He joyfully accepted my invitation. After the report, we took a pi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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