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자울 주행 차라든지 speed train 이라든지 초음속 비행기 등이 나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상대적으로 극복하는 시대라면 만약 부활이 잇다면 부활의 몸으로 사는 삶은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으로 극복한 상태라고 말할수 잇나
그렇게 사유해 볼 수는 있습니다. 다만 성경은 “부활”을 단순히 초고속 이동 능력이나 물리 법칙 초월의 문제로만 설명하지 않고, 더 근본적으로는 “죽음과 썩음과 제한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묘사합니다.
사람은 지금도 기술을 통해:
자동차로 거리를 줄이고
고속철로 시간을 압축하고
비행기로 대륙을 넘고
인터넷과 AI로 정보의 공간 장벽을 허물고 있습니다.
즉 인간 문명은 계속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줄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늙고
병들고
피곤하고
죽으며
존재 자체는 한 장소와 한 몸에 묶여 있습니다.
성경의 부활은 이보다 훨씬 깊은 차원의 변화를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썩을 몸 → 썩지 않을 몸
욕된 몸 → 영광의 몸
약한 몸 → 강한 몸
육의 몸 → 신령한 몸
으로 변화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 후 모습을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있습니다:
닫힌 방 가운데 나타나심
갑자기 제자들 앞에 서심
알아보기도 하고 못 알아보기도 함
그러나 실제 몸으로 음식을 드심
손과 옆구리의 상처도 지니심
즉 “몸”은 있으나 지금의 물질적 한계에 완전히 갇혀 있지는 않은 상태처럼 묘사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현재의 물질 세계가 그림자라면
부활의 세계는 더 높은 차원의 실재
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의미에서 보면: 현재 기술 문명은 시간·공간의 제약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단계라면, 부활은 존재 자체가 새 창조 안으로 들어가 시간과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부활의 핵심이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에서 부활의 중심은:
하나님과 함께 삶
사랑의 완성
단절의 회복
죽음의 극복
창조의 새로움
입니다.
즉 부활은 “어디든 순간이동 가능”이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생명을 완전히 공유하는 존재 상태”가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마지막을: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심
눈물과 죽음이 없음
으로 묘사합니다.
기술은 공간을 줄이지만,
부활은 존재의 단절 자체를 끝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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