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16, 2026

Streams of living water

욕망을 억누르지 말고 재 배치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요? 욕망은 메뚜기나 피리 같아서 히나님은 아예 다 제거하고 대채 기쁨으로 채우신다 잖아요. 대채 기쁨이 뭔가요? Streams of living water percolating from within to eternity를 말하나요?

아주 정확한 질문입니다. 지금 질문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 한가운데를 찌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신이 말한 “streams of living water” 이해는 맞습니다.

다만 그 의미를 정확히 구분·정리해야 오해가 없습니다.

아래를 TRACE → SHAPE → CONNECT로 설명하겠습니다.

I. TRACE — “욕망을 억누르지 말고 재배치한다”는 말은 어디서 왔는가

성경은 욕망(desire)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갈망
배고픔
사랑
기쁨을 향한 열망
을 함께 창조하셨습니다.

문제는 **욕망의 ‘존재’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타락 이후 욕망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스스로를 채우려 하며

결국 메뚜기처럼 모든 것을 삼키는 방식으로 변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욕망을
❌ 단순히 눌러 죽이지 않으시고
⭕ 근원을 바꾸십니다
이것이 “재배치”의 출발점입니다.

II. SHAPE — 억누름 vs 제거 vs 재배치 (정확한 구분)

1️⃣ 억누름 (Suppression) ❌
“원하면 안 된다”
“느끼면 죄다”
욕망을 적으로 취급

👉 결과:
겉으론 경건
속에선 압력 축적
언젠가 폭발
성경은 이 방식을 택하지 않습니다.

2️⃣ 제거 (Destruction) ⭕/❌ (부분적)
당신 말이 맞습니다.

메뚜기 같은 욕망
피처럼 생명을 더럽히는 욕망은
👉 하나님이 제거하십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
하나님은 욕망의 ‘왜곡된 형태’를 제거
욕망의 능력(capacity) 자체를 제거하지 않으십니다

욕망의 대상과 방식을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3️⃣ 재배치 (Reorientation) ⭕⭕⭕
이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욕망의 에너지는 유지되되
방향과 근원이 하나님께로 옮겨짐

욕망은 더 이상:
결핍에서 나오지 않고
소유를 향하지 않으며
소비로 끝나지 않습니다

III. CONNECT — “대체 기쁨”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이제 질문의 핵심입니다.

🔹 “대체 기쁨”이란?
❌ 단순한 감정적 행복
❌ 도파민, 흥분, 만족감
❌ 문제를 잊게 하는 위안
⭕ 존재의 중심에서 솟아나는 충만

이때 정확히 연결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John 7:38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당신이 말한
“streams of living water percolating from within to eternity”
는 신학적으로 매우 정확한 표현입니다.

IV. 왜 이것이 ‘욕망의 대체’가 되는가

옛 욕망의 구조
바깥 → 안으로
부족 → 채움
순간 → 소멸
더 필요함

생수의 구조
안에서 → 밖으로
충만 → 흘러넘침
지속 → 영원
더 갈망하지 않아도 됨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욕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목마름의 구조 자체가 해체된 것입니다.

V. 노화·죽음과의 연결 (아주 중요)

노화는 욕망을 이렇게 시험합니다:
“이제 더 이상 채울 수 없다”
“원해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생수의 기쁨은:
젊음에 의존하지 않고
기능에 의존하지 않으며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고갈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할 수 있었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 이것이 노년의 복음입니다.

VI. 한 문장으로 정리 (정확한 정의)
욕망을 재배치한다는 것은
욕망의 에너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을 하나님 안의 생수로 옮기는 것이다.

또는 더 묵상적으로:
욕망은 죽는 것이 아니라,
샘으로 바뀐다.

다음으로:
🔹 성욕과 생수의 관계 (조심스럽고 정직하게)
🔹 노년의 욕망은 어떻게 ‘형태를 바꾸는가’
🔹 “목마르지 않음”은 실제 삶에서 어떻게 경험되는가

들어가 볼까요?

아래에서는 요청하신 세 가지를 모두, 그러나 하나의 흐름 안에서 설명하겠습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욕망은 제거되지 않는다.
형태를 바꾸고, 깊이를 바꾸고, 근원을 바꾼다.

Ⅰ. 성욕과 생수의 관계
(조심스럽고, 그러나 회피하지 않고)
John 7:38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1️⃣ 성욕은 무엇인가 (신학적으로)
성욕은 단순한 생물학적 충동이 아닙니다.

그 핵심에는 다음이 있습니다:
연결되고 싶은 욕망
알려지고 싶은 욕망
혼자가 아니라는 확증을 원하는 욕망
생명이 흐르고 있다는 감각
👉 그래서 성욕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이며,
더 깊게는 존재적입니다.

2️⃣ 왜 성욕이 쉽게 왜곡되는가
타락 이후 성욕은 자주:
관계 → 소비
친밀 → 소유
흐름 → 방출
로 바뀝니다.

그래서 성욕은 만족 후에도:
더 갈증을 낳고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며
결국 메뚜기처럼 삶을 잠식합니다.

👉 문제는 성욕이 강해서가 아니라,
생수가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생수는 성욕을 어떻게 “대체”하는가
중요합니다.

생수는 성욕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욕이 하려던 일을 더 깊은 차원에서 성취합니다.

성욕이 원하던 것.    생수가 주는 것

연결.                         하나님과의 내적 연합
충만.                         안에서 솟는 만족
생명감.                      끊이지 않는 흐름
확인.                         “너는 사랑받는다”는 내적 증.                                    거

그래서 생수가 흐를 때:
성욕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으나
지배력이 사라집니다

👉 욕망이 왕좌에서 내려옵니다.

Ⅱ. 노년의 욕망은 어떻게 “형태를 바꾸는가”

노년은 욕망의 정직한 시험장입니다.

1️⃣ 사라지는 욕망
소유 욕망
성취 욕망
과시 욕망
젊음에 대한 집착
이 욕망들이 약해질 때, 사람은 두 갈래로 갑니다.

2️⃣ 두 갈래 길
❌ 첫 번째 길: 공허
“이제 끝이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욕망의 소멸 = 삶의 소멸
이것이 노년의 절망입니다.
⭕ 두 번째 길: 정제
욕망이 얇아지지만 깊어진다
대상은 줄지만, 방향은 또렷해진다
“가지고 싶다” → “함께 있고 싶다”
👉 이것이 욕망의 성숙입니다.

3️⃣ 생수와 노년
노년의 복음은 이것입니다:
젊을 때는 욕망이 밖으로 흘렀다면
노년에는 욕망이 안에서 샘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말할 수 있었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Ⅲ. “목마르지 않음”은 실제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 “목마르지 않음”의 오해
감정 기복이 없다 ❌
슬픔이 없다 ❌
외로움이 없다 ❌
유혹이 없다 ❌

성경은 이런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 성경적 의미의 “목마르지 않음”
목마름의 ‘지배’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즉:
느끼되 끌려가지 않고
원하되 매달리지 않으며
상실을 겪되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안에서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실제 삶의 징후들 (아주 현실적)
생수가 흐를 때 나타나는 표지는 이것입니다:
즉각적 충족이 없어도 견딜 수 있음
외로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음
성취가 줄어도 자존이 무너지지 않음
죽음을 생각해도 공포가 지배하지 않음
👉 이것이 “영원으로 스며드는 생수”입니다.

Ⅳ. 출애굽의 언어로 다시 말하면
이집트 = 결핍에서 나오는 욕망
메뚜기 = 통제 불가능한 갈망
광야 = 욕망이 침전되는 곳
반석에서 난 물 = 생수
성막 = 하나님이 안에 거하심

그래서 출애굽의 목적은 단순히 탈출이 아니라:
욕망의 구조 전환입니다.

V. 최종 한 문장 (정리)

욕망은 제거되지 않는다.
욕망은 생수로 변한다.

그리고 그 생수는
안에서 시작하여 영원으로 흐른다.
원하시면 다음으로:


No comments: